산악인 허영호 별세|사망 원인|프로필|나이|탐험가|부인|아들|
대한민국 산악계의 전설로 불리는 허영호 대장은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며 세계적인 업적을 남긴 산악인입니다. 1954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그는, 한국 산악 역사의 큰 흐름을 이끈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1987년 한국인 최초로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후 지구의 3극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모두 이뤄내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산악 대장으로서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던 안전한 원정을 이끈 그의 리더십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단순한 등정가를 넘어 산과 사람을 모두 품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단지 험난한 산을 넘는 여정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허영호 대장의 삶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 이름
허영호
❖ 생년월일
1954년 4월 16일
❖ 나이 / 향년
71세 (2025년 기준)
❖ 사망
2025년 7월 29일
❖ 사망원인 / 사인
담도암
❖ 빈소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
❖ 발인
8월1일 오전 10시40분
❖ 장지
충북 제천 선영
❖ 고향
충청북도 제천시
❖ 본관
양천 허씨
❖ 학력
제천 금성초등학교 (졸업)
제천 제천고등학교 (졸업)
청주 청주대학교 (체육학 / 학사)
서울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최고위과정 / 수료)
❖ 경력
산악인
❖ 병역
육군 전역
❖ 신체
키
172cm
❖ 가족관계
배우자
부인
자녀
아들 1명 / 딸 1명
❖ 종교
미상
❖ 등반 일지
1982년 - 히말라야 마카루
1983년 - 마나슬루
1987년 - 에베레스트
1989년 - 로체
1991년 - 북극점
1992년 - 아콩카과
1992년 - 데날리
1992년 - 킬리만자로산
1993년 - 에베레스트
1993년 - 남극점
1994년 - 칼스텐즈
1995년 - 북극해 횡단
1995년 - 코카서스 엘브르즈
1995년 - 빈슨 매시프
1996년 - 데날리
1996년 - 남극점
1997년 - 초오유
1998년 - 킬리만자로산
1998년 - 코카서스 엘브르즈
1999년 - 침보라조, 코토팍시
1999년 - 에베레스트
2000년 - 코지우스코
2001년 - 클류체프스키야
2002년 - 에베레스트 뷰포인트 트래킹
2003년 - 몽블랑
2005년 - 킬리만자로
2007년 -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
❖ 탐험가 허영호 소개
대한민국 산악계의 전설로 불렸던 허영호 대장은 한국 산악인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로, 험난한 자연 속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며 숱한 위업을 남겼습니다. 1954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제천 금성초등학교와 제천고등학교를 거쳐 청주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최고위과정을 수료하며 학문적인 기반도 탄탄히 다졌습니다.
그의 산악 인생은 1982년 히말라야 마카루(8,485m) 등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고산 원정에 뛰어든 그는 1987년 12월 22일, 한국인 최초로 겨울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등산가가 정상에 올랐다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산악계의 수준을 세계 무대에 증명한 쾌거였습니다.
허영호 대장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4년에는 남극점에, 1995년에는 북극점에 도달하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구의 ‘3극점’—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을 모두 밟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95년 12월 12일, 남극 대륙의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5,140m) 등정까지 성공하며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과 ‘3극점’ 모두에 오른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가 오른 7대륙 최고봉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6,959m), 북미의 데날리(6,194m, 구 매킨리),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4,884m), 유럽의 엘부르즈(5,642m), 그리고 남극 대륙의 빈슨 매시프까지. 이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지리적 극한을 몸소 경험하고 정복한 한 인간의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허 대장이 특히 높이 평가받았던 점은 ‘원정대장’으로서의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는 수차례의 대규모 원정을 이끌면서도 단 한 명의 대원도 사망하거나 동상 등의 큰 사고를 겪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는 그의 철저한 준비와 판단력, 리더십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대원들의 생명을 끝까지 지키며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단순한 ‘등정가’를 넘어선 지도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 대장은 2017년 5월, 만 63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다시 한 번 성공하며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여전히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으며, 그동안의 경험이 단순한 과거의 영광이 아님을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그는 생애 총 6차례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국내 최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허 대장의 헌신과 업적은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체육 분야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차례로 수여받으며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엄홍길 대장 이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인 등산가를 꼽자면 단연 허영호 대장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산 등정이라는 극한의 세계에서 한국인의 도전 정신과 열정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삶과 도전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인간 의지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실천적 철학이자, 후배 산악인들에게 길잡이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는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허영호 대장은 2024년 12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약 8개월의 병마와 싸움 끝에 2025년 7월 29일 오후 8시 9분, 향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굳건한 의지로 병을 견뎌내며,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도 자신다운 품격을 지켰습니다.
허영호 대장의 삶은 수많은 기록과 성취로 가득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함께하는 등반’을 중요시하고, 동료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인간적인 품성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산을 오르는 것’이 단지 정상을 밟는 행위만이 아님을, 그 길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과의 신뢰와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산악사의 한 페이지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수많은 후배 산악인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영감이자 등불이 되어줄 허영호 대장. 그가 정복했던 수많은 봉우리 위로, 오늘도 조용히 그를 기리는 바람이 불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허영호 대장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도전과 헌신은 산처럼 깊고 높게 남아 있습니다. 누구보다 산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그는 끝내 병마와 싸우다 조용히 마지막 길에 올랐습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유산이 되었습니다. 거친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끝내 정상에 올랐던 그의 강인한 의지는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위험한 능선을 걷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평안히 쉬기를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깊이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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